송결칼럼 – 독도는 한국땅(12)

2014.06.16 08:45:11

일본과 우리나라의 독도분쟁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1945년 해방되기까지 36년간이나 우리나라를 식민지배 해놓고 반성조차 안하는 그들의 야욕은 섬나라의 근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36년간 일본식민 지배하의 우리국민들의 삶은 정말 철저히 인권을 유린당한 채 노예의 생활 그 자체였다. 그것도 모자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침략야욕의 본성을 보여준 그들이 또다시 그 검은 발톱을 서서히 들어내며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에 공포한 평화 헌법의 헌법 9조에서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라고 명시 했드시 군국주의 야욕을 접었는가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들은 세계의 평화질서를 위협하는 허황된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우익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과거 함께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던 이탈리아나 독일 같은 나라는 전 세계에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하고 이웃나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데 유독 일본만큼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다. 정말 한마디로 우리의 이웃으로서의 선린 외교를 펼쳐야 할 나라인지 심사숙고 하지 않으면 안 될 나라이다.


고대시대 아시아대륙과 일본열도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일본과 접하고 있는 한국의 동해는 호수였다고 한다. 그 후 각종 지각변동에 의해 일본열도는 한반도로부터 분리되어 지금과 같은 지형이 되었지만, 아직도 한국과 일본은 서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지리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말과 문자·문화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도 깊은 관계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약 6세기경까지만 해도 한·일 양 국민은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친밀한 관계로 인해 고대의 한반도로부터 여러 가지 학문과 기술이 일본에 전래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수도농경(水稻農耕)이나 청동기 제조기술의 전수를 비롯하여 백제 등을 통한 유교·불교·도교의 정신문화와 천문·건축 등의 기술문화가 전래되었다. 지금도 그들의 나라에서 출품되는 여러 유물로도 증명되고 있다. 


돗토리대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팀은 돗토리현의 한 묘에서 출토된 유골 7점에서 DNA를 추출해 미토콘드리아와 DNA 염기배열을 분석한 결과 기원전 4, 5세기, 벼농사를 시작했던 일본 야요이인들의 DNA가 한국의 현대인, 그리고 혼슈의 일본인과 동일한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찌 보면 하나의 민족이 맞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형제들끼리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형제끼리도 서로의견이 안 맞으면 싸울 수도 있다.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된 일은 칭찬 하며 이웃 간의 신뢰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우익세력의 아베가 정권을 장악하고 난후 헌법을 뜯어고쳐가며 군국주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전쟁은 재래식 무기였기에 수많은 인명살상과 파괴가 있었어도 어느정도 복구가 가능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의 핵을 위시한 현대 무기는 다시는 복구가 불가능 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세계3차 대전으로 이어져 지구는 멸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든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파괴도 문제지만 인명 살상의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인류의 멸망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그들의 띄어난 디지털기기의 발달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기로 중무장하며 세계 질서를 위협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야욕부활의 일환으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우리나라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이에, 우리의 국력을 한군데로 모으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어떤 불상사를 당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독도는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 왔으며, 오늘날의 명칭인‘독도’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광무 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울릉군수보고서’와 한말지사 황현의 ‘매천야록’ 에서였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와 열전’ 에서는 서기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 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우산국은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2섬으로 구성된 고대 해상 소왕국 이었다.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세종실록지리지’(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요람 군정편’(1808년), 등 각종 고문헌과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까지 독도의 이름이 우산도였던 사실도 독도가 우산국의 영토였음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독도를 계속 자기네 땅 이라고 우기는 데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독도 주위는 풍부한 플랑크톤으로 황금 어장을 형성하고 있어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와 전복, 소라 등과 같은 해양생물 및 다시마, 미역 등의 해조류들이 풍부해 최고의 황금 어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독도지역의 하이드레이트 매장량 때문이다. 해저나 빙하 아래에서 메탄과 물이 높은 압력을 받으면 고체로 얼어 붙는데 이것이 하이드레이트 이다. 드라이아이스와 비슷한 형태인 하이드레이트는 불을 붙이면 얼음이 녹으면서 메탄이 타오르는 일명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천연가스로 화석 연료를 대체할 미래 청청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메탄이 주성분인 하이드레이트는 보통 대륙 연안 1000m 심해에 매장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추정된 독도 인근에 매장된 하이드레이트 양만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30년치(150조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셋째 자국 해안으로부터 200해리(약 370.4km)까지 모든 자원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배타적 경제 수역 때문이다. 즉, 배타적 경제 수역 안에서는 모든 경제적 권리를 가질 수 있기에 독도를 끝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이다.
 

독도 영유권 분쟁은 단순한 역사적 영토 분쟁의 문제 뿐 아니라 미래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느냐 빼앗기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독도와 관련된 영유권 분쟁은 이제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 이다. 
문화투데이 기자 etvoc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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