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결칼럼 – 의상심리(34)

2014.11.17 08:45:10

대한민국의 온산이 알록달록 물들어있다. 거기에 사람들도 여러 색상의 등산복을 입고 산을 꽉 메우고 있으니 사람인지 단풍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사람들 모두가 등산 열풍에 빠졌다. 남녀노소 모두가 토요일 아침이 되면 북쪽으론 북한산 남쪽으론 관악산 등지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기마다 멋진 칼라 풀한 등산복에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산을 열심히 오르는 모습이 미래의 건강한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등산복의 용도가 문제이다. 공사장에서 막일하는 사람들도 이 등산복을 입고 있고, 시장을 갈 때도 등산복 차림이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의 어느 미술관에 이 등산복 차림의 한국인들이 들어와 관람을 하고 있어서 ‘여기는 산이 아닙니다’ 라고 관계자들이 얘기했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등산복이 다용도로 쓰인다.


의상이란 장소에 어울려야 한다. 상가 집에 갈 때는 되도록 검정 예복을 결혼식장에서도 정장을 입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고 있다. 나만 편하자고 예의에 어긋나는 의상을 입는다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쪽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상에 따라서 행동하는 방법도 틀려진다. 청바지같이 편한 복장 일 때는 아무데서나 주저앉을 수도 있고 해서 모든 말도 편하게 해진다. 등산복을 입었을 때도 행동하기가 편하기에 목소리까지 커진다. 그러나 정장을 입게 되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스러워 지는 것이다.


경찰이나 군인이 제복을 입었을 때 의사와 간호사가 까운을 입었을 때 스님이 승복을 입었을 때 그 옷의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다. 그것이 제복의 힘인 것이다. 이모든 것이 의상심리다.


옷의 역사를 보면 신석기시대의 유물로 뼈바늘과 돌로 된 방추가 발견돼 그 시대에 이미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의 전통 의상인 한복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현재의 전통적인 한복은 조선 시대 후기에 정착된 것이다. 


삼국시대 때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 모두 비슷했으며 대체로 유(저고리), 고(바지), 상(치마), 포(두루마기)를 중심으로 관모(모자), 대(허리띠), 화(신발)가 더해졌다.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당나라의 영향으로 한국 고유의 포는 서민들이 주로 입었으며 귀족들은 평상복으로만 입었다. 여성들의 새로운 옷으로는 반비(半臂)가 있었는데 소매가 없거나 있어도 짧은 옷으로 주로 귀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다.


고려시대 때에는 귀족층이나 지배층에서는 중국옷을 그대로 받아들여 입고, 서민층에서는 한국 고유의 복식을 계승해 입어 복식의 이중 구조가 나타났다.


조선시대 때에는 한국 고유의 복식은 서민 복으로 뿌리 깊게 이어졌다. 중기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실용성이 강조되면서 한층 단순해지고 말기에는 신분제도가 허물어지면서 양반과 서민의 옷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 특히 여자 저고리는 조선시대 후기로 가면서 길이가 짧아져서 오늘날과 거의 같은 모양이 됐다.


그리고 양복의 역사를 보면 고대의 페르시아인은 옷을 재단해 몸에 맞게 입었고, 그리스인은 장신구를 많이 착용했다. 


중세에는 동양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단을 많이 사용하고 자수와 진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지배층 사람들은 매우 정교하게 장식한 튜닉을 입었고 평민들은 소박한 튜닉을 입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자들은 큰 꽃무늬가 그려진 밝은 색 천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남자들은 주름이 많은 겉옷에 몸에 꼭 끼는 셔츠를 입었다.


17세기경에는 바로크 양식의 정교하게 장식된 옷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모았다. 특히 여자들은 팔을 노출시키는 파격을 보였으며 긴 장갑을 꼈다.


18세기에는 로코코 양식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드레스는 허리가 꽉 조이고 치마폭이 넓었다. 


19세기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의류산업이 번창해 기성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가벼운 면직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턱 밑에서 끈을 묶는 보닛을 썼다. 

남성복의 경우 무릎까지 오는 바지 대신 긴 바지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이후 200년이 넘도록 남성복의 기본 양식이 됐다.


20세기 때는 남녀 모두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기성복을 입었다. 레저복과 운동복에서 여성의 신체를 노출시키게 됐는데 1920년대에는 다리, 1940년대에는 배, 1960년대에는 허벅지를 노출시키는 옷이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한층 편한 옷이 유행했고 1990년대에 와서는 복고풍이 유행하고 남녀 옷 사이에 차이가 없어졌다.


원래 의복의 출발점은 지구환경에 적응 할 수 있는 신체보호의 용도로 출발됐다. 뜨겁고 냉한 기온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용도로 의복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그러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척도중의 하나인 예(禮)를 지키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려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옛말에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의상의 중요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그 위상도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어떤 색의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그날의 기분도 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의 모양에 따라서 또 어떤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서도 의상이 틀려지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것이 의복인 것이다.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자가 맨 앞에 있는 이유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의복이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옷을 입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이제는 등산복을 입고 가는 곳은 레져 생활을 위한 산이나 바다로 한정됐으면 좋겠다. 
문화투데이 기자 001@foodtoda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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