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결칼럼 – 한글의 세계화(27)

2014.09.29 08:51:28

서기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에 한글 28자가 창체돼 3년여의 시험기간을 거쳐 1446년(세종 28)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한글이 반포됐다. 현재의 한글은 그중 4글자가 소멸돼 24자가 쓰이고 있다.


세종대왕의 주도하에 집현전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한글의 창제는 세종의 강한 민족자주정신과 민본주의를 읽을 수 있다. 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세종대왕은 다른 나라 글자들은 도저히 빌려 쓸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려 말기 몽고에게 당한 곤욕과 원나라와 명나라의 갈음 시기에 즈음해, 나라 안에서는 자아의식이 강했다. 주위의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한자를 빌려 썼는데 그것으로 우리말을 적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민본 정신이 투철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과감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던 세종은 한글창제를 결심하고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독창적인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창조해 낸 것이다. 


세종의 이러한 정책을 도울 만한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던 집현전에는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 중국말의 통역사를 양성하고 있었다. 그들을 과학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중국말의 소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게 됐는데 이 운학의 체계는 새 글자를 만들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조선시대 학자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에서는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었던 ‘이두’ 글은 막혀 잘 통하지 않고, 품위가 없고 체계가 없어 상고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말을 적는 데 있어서는 만에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를 못한다고 했다. 정인지는 “지혜로운 사람이면 훈민정음을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한글은 쉽고, 과학적이며 독창적이다.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여러 특성을 갖고 있다. 한글은 음절을 닿소리와 홀소리로 나누고, 받침은 닿소리가 다시 쓰이게 함으로써 가장 경제적인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알타이어계 언어의 공통 특징인 모음조화를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또한 보편적인 음성기호로 사용해도 충분할 만큼 조직적이며,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표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음절구성의 원리가 간단해 배우기 쉬우며, 영어나 프랑스어 처럼 자리에 따라 문자와 소리가 다른 경우가 거의 없다.


이렇게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한글은 음성학적인 변별요소를 가장 함축적으로 문자의 형태에 반영하고 있고, 문자의 구성요소 역시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세계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창제, 반포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약 60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문자는 세계에서 오직 한글밖에 없다.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는 한자나 영어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자는 문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나타내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3000자에서 5000자 정도의 문자를 외워야만 했다.


반면, 한글은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인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24개의 문자만 익히면 그것을 조합하여 수없이 많은 낱말을 만들 수 있어서 편했다. 


영어의 예를 들어 apple의 a는 [æ]로 소리 나고, art의 a는 [a]로 소리가 난다. 하지만 한글의 경우 하나의 문자는 하나로만 소리 나니까 문자가 어떻게 소리 나는지 헷갈릴 염려가 없다.


한글은 무려 1만 1000여 개의 발음을 적을 수 있다. 일본 300여 개, 중국 400여 개에 비교해보면 얼마나 뛰어난 글자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가히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자랑할 만하다.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약 78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모국어 사용자 기준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약 6900여 개 언어 중 세계 13위다. 언어별 인터넷 사용자 수 순위에서는 세계 10위에 올라 있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처럼 유엔 공용어가 아닌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순위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1910년대 초에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한’이란 크다는 것을 뜻하니, 한글은 ‘큰 글’을 말한다.


이렇게 띄어난 한글 창제를 기념하기 위한 한글날의 처음이름은 ‘가갸날’이었다. 가갸날이 처음 제정된 1926년에는 11월 4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완성된 것은 1446년 음력 9월이다. 그래서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는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을 기념하는 날로 정했다가 1928년부터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본 식민지하의 대한민국은 1931년 무렵부터 많은 사람들이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한글이 반포된 1446년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보니 1931년에는 10월 29일이 한글날이 됐다. 이후 정확한 양력 환산법인 그레고리력을 적용해 1934년부터는 하루 앞당겨 10월 28일을 한글날로 했다. 


그러다 1940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발견되어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의 서문에 반포일이 9월 '상한(上澣)'으로 나타나,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한 것이다.


한편, 유네스코에서 해마다 문맹을 없애는 데 공이 큰 사람이나 단체에게 주는 '세종 대왕상'이란 상이 있다. 이 상은 1989년 6월 우리나라의 제안으로 유네스코에서 만들었고, 이듬해 1990년부터 해마다 문맹 퇴치의 날인 9월 8일에 시상을 해 왔다. 


1990년에는 인도의 과학 대중화 운동 단체인 ‘KSSP’가, 2007년에는 탄자니아의 엔지오인 ‘아동 도서 프로젝트’와 세네갈의 엔지오인 ‘토스탄’이 상을 받았다.


지금 전 세계의 환호를 받고 있는 한류 열풍의 주역 K팝의 위력에 한글의 우수성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소리나 뜻도 자유자재로 구사 할 수 있는 한글의 과학적인 체계와 음악의 구성상 아주 중요한 표현력에 관한한 세계의 어떤 글자도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띄어난 한글의 우수성을 우리가 전혀 인식 못하고 영어 등 외국어에만 몰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상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한 인터넷 용어의 한글 훼손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인 한글 보호정책을 교육계에 인식시키는 것은 물론, 쉽게 깨우칠 수 있는 과학적인 우리한글의 세계화에 힘써 세계 문맹퇴치에 일조를 하는 바람직한 정책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투데이 기자 etvoc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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