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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는 인생사, 노래와 삶-③ 가수 현인, 조국광복과 함께

트로트, 답답함과 따분함을 날려 보내는 국민 청량제 역할
너도나도 듣고 부르는 국민가요로 부상, 시간 갈수록 인기
무명가수들 하루아침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라 수입도 껑충
트로트 역사속의 인물 부산출신 가수 현인, 조국광복과 함께

[뉴시니어 = 구재숙 기자]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모두가 심신이 지쳐가는 와중에도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나고 기분이 새로워진다. 가요 중에서도 트로트에 사람들의 귀가 쫑긋해 진다. 답답함과 따분함을 동시에 날려 보내는 마력을 지닌 트로트는 우리 모두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어디를 가나 트로트 빼고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우울해진 사회분위기에 활력소 역할을 하는 트로트의 인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명가수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트로트만 불렀던 가수들이 이제는 살판나서 수입도 껑충 뛰어서 그야말로 이래저래 화제가 되고 있다. 요즘은 미스트로트나 미스터트로트 가수들이 끼이지 않으면 채널을 고정하기가 힘들 정도로 이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오르고 있다.

 

울고 웃는 인생사, 노래와 삶 연속 시리즈 3탄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뭐니 뭐니 해도 우리 대중가요의 주류는 트로트다. 한국 가요 트로트의 역사를 추적해 가보자.

 

1940년대는 현인이라는 독특한 창법의 가수가 출현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은 우리 민족에게 뜨거운 기쁨을 안겨줬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사회는 기쁨과 혼란이 뒤범벅이 되면서 가요계도 정신이 없었다. 일본인들이 장악했던 가요계를 물려받은 한국 가요계 인사들은 겨우 안정을 찾고 시동을 걸었다. 이때 나와서 히트를 한 노래가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었다.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의 신라의 달밤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아 신라의 밤이여 화랑도의 추억이 새롭구나

푸른 강물 흐르건만 종소리는 끝이 없네

화려한 천년 사직 간 곳을 더듬으며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아 신라의 밤이여 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워라

대궐 뒤에 숲 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

님들의 치맛소리 귓속에 들으면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신라의 달밤》 가사에 녹아 있는 내용은 조국광복 후에 이제 우리의 정신을 되찾자는 의미가 다분했다.

 

현인은 일제강점기 말엽, 악극단 활동으로 가요계에 입문하였고 본명은 현동주(玄東柱)다. 1944년 이후 중국에서 가수생활을 하다가 1946년 귀국하여 라틴음악계통의 외국가요와 샹송을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러 무대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신라의 달밤》 역시 현인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러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 속에 유행되었고, 《신라의 달밤》은 현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1947년에 데뷔 한 현인은 《신라의 달밤》을 크게 히트 시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사회는 물론이지만, 가요계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현인에게는 다행인 것이 그는 부산 출신이어서 그나마 가요계 활동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현인의 《전우여 잘 자라》, 신세영의《전선야곡》과 같은 전쟁가요가 유행하기도 했다. 휴전 이후에는 전쟁의 아픔과 실향민의 비애를 그린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같은 곡이 유행 했다. 특히 1954년에 이해연이 발표 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한국 전쟁의 아픔을 깊이 담아냈다는 평가를 얻어 크게 히트 했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현인가요제는 부산시에서 2005년 8월 송도해수욕장에서 개최됐다. 지금도 매년 개최되고 있는 우리나라 유명 가요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현인(1919년~2002년)은 부산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1942년에는 현 도쿄예술대학의 전신인 우에노 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원래 그의 아버지는 현인이 사관학교에 가기를 원했지만, 현인 본인은 음대에 진학하여 교수가 되기를 희망했다. 화가 난 아버지는 그의 대학 학비를 끊어버리자,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악단 '신태양'을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 귀국하여 악단을 다시 조직하여 극장 무대에서 연주하며 다녔다 한다.

 

이 무렵 당시의 유명한 작곡가 박시춘을 만나 《신라의 달밤》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굳세어라 금순아》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대중가수로 유명해 졌다. 1998년까지는 KBS 가요무대와 악극 등에 출연하여 왕성한 활동을 했었지만, 지병인 당뇨병의 악화로 2002년 4월 13일 82세로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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