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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는 인생사, 노래와 삶-⑥ 트로트 4인방 전성시대

트로트가 아니라면 보지도 듣지도 않고 대화가 안 될 지경
방송 티브이 트로트 프로그램에 채널 고정, 너도나도 트롯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우울한 분위기 전환에 트로트가 최고
‘80년대 트로트 4인방 송대관.태진아.현철.설운도 아직 건재

[뉴시니어 = 구재숙 기자] 요즘 트로트가 아니면 대화가 안 된다.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오직 트로트다. 티브이 채널도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아니면 별 관심이 없는 듯, 채널을 돌려버린다. 트로트가 정말 이렇게 까지 인기절정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오직 TV조선의 몇몇 프로듀서들만이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과감하게 프로그램을 편성, 대박을 터드린 것이다.

 

 

국민들의 가려운 마음을 긁어 준 것이다. 미스트롯 경연에서 서서히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결국에는 미스터 트롯으로 절정에 달했다.

 

게다가 우연치고는 너무나 공교롭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회 분위기는 냉각되고 말았는데, 미스터트롯이 틈새에서 큰 역할을 했다. 시청률 35%를 기록할 정도였다. 어디를 가나 트로트가 아니면 화제가 되지 않았다.  파급력은 대단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과 노래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는 트로트 가수들의 얼굴이 각인되어 있어서 어른거릴 정도다.

 

인기(人氣)는 소수의 집단이나 전문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사용하거나 소유하게 되는 사회현상이다. 이것을 대중화라고도 한다. 대중화는 소수의 집단이나 전문가에게만 보급되어 있던 사물이 대량생산 등을 통한 가격하락으로 시작된다. 몇몇 지식인이나 특권층만 보던 책이 인쇄의 발달로 누구나 싼 가격에 사서 볼 수 있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증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음악은 본래 대중을 위한 음악이지만, 특히 트로트만이 대중과 호흡을 하는데 폭발력을 갖는다.

 

한국 대중가요사상 이번처럼 트로트가 뜬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할 정도로 전 국민들의 마음을 들썩 거려 놓고 있다. 점잖은 분들도 트로트 한 곡 정도는 흥얼거린다. 아마도 이런 트로트 열기와 인기는 10년 정도는 더 가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이제 이야기를 트로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70년대 남진, 나훈가 트로트 계를 석권했다면 ’80, ‘90년대는 송대관, 태진아, 현철, 설운도가 주도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1975년 송대관이 직접 작사한 《해뜰날》이 많은 사랑을 받아 가수왕에 등극했고, 1976년에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크게 히트 하면서 트로트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 갔다.

 

 

조용필이라는 대형가수가 등장,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등의 트로트 가요를 히트 시켰고,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가 등장했으며, 심수봉은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처음으로 트로트로 출전 해 입상 한 계기로 《당신은 누구시길래》, 《무궁화》, 《사랑밖엔 난 몰라》등 자작곡들을 히트 시켰다.

 

1984년《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2만 여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현미는 약사 출신으로 제 2회 강변가요제로 데뷔, 《비내리는 영동교》, 《울면서 후회하네》,《눈물의 부르스》등을 히트 시켜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으로 MBC 10대 가수상, 제18회 KBS 가요대상 대상, 제 3회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 하였다.

 

1980년 대 후반은 트로트의 최고 정점을 찍는 시기였다.

 

1987년 당시 여고생이던 문희옥이 《사투리 디스코 메들리》로 360만 장을 판매 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데뷔 했으며, 1989년 새로운 도시로 떠오르던 남 서울 영동을 노래한 《사랑의 거리》를 발표 했다.

 

문주란이 남편과 아내의 삶을 표현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를 히트 시키면서 여러 세대층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크게 성공 한 김연자의 《수은등》, 미8군부대에서 활동 하던 김지애의 《물레야》가 히트되어 트로트를 활성화 시켜 주었다.

 

문성재는 1982년에 《부산 갈매기》를 불렀고 이 노래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대표팀의 응원가로 쓰이면서 더욱 히트 하였다. 그 해 설운도는 KBS '신인탄생'으로 데뷔 하였고 데뷔곡 《잃어버린 30년》은 이산가족 찾기운동의 주제가로 쓰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철은 1989년 《봉선화 연정》으로 KBS 가요대상 본상을 수상 하면서 트로트 황제의 위력을 전국에 전파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태진아는 임종수가 작곡한 《옥경이》로 가수로써 두 번째 데뷔를 하였고 가요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980년대 말에 미국에서 귀국해 대성공을 이뤄낸 송대관과 태진아는 트로트 신예로 급상승한 설운도,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인기를 얻은 현철과 함께 트로트 4인방시대를 형성, 트로트 음악의 부활을 주도 하였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정통 트로트를 고수 하는 방식과는 약간의 다른 음악적 요소를 접목시켜 새로운 방식의 트로트를 대중들에게 선 보이기도 했다.

 

배일호는 농민 출신 가수로 《신토불이》를 불러 한국산 농산물을 홍보 하는 계기가 되어 한 동안 코리아 드림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제 트로트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트로트 열풍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회분위기가 어수선한데, 트로트는 위안을 주고 괴롭고 답답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달콤한 향기를 주면서 힘을 솟구치게 만든다.

 

‘울고 웃는 인생사’, 트로트가 없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삭막할까 하고 몇 번이고 되 뇌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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