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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명 사찰 탐방-④ 태고종 26대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과 춘천 석왕사

편백운 스님, '구름처럼 물처럼 걸어온 수행납자의 길' 출간

[뉴시니어 = 보검스님 기자]  한국불교 태고종 제26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편백운 스님의 ‘구름처럼 물처럼 걸어온 수향납자의 길’ 어록집이 발간됐다.

 

편백운 스님은 “26대 집행부를 신뢰하고 성원해주셨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뜻에서 재직 시에 추진하고 활동했던 과정을 책으로 정리하여 종도여러분께 증정해 올리오니 바쁘시더라도 한번 읽어 보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출간의 변을 토했다.

 

“세상일이란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절처봉생(絶處逢生)의 순환이 있는 법이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습니다. 태고종사의 긴 역사에서 보면 역대 집행부의 평가가 올바르게 내려지리라 기대하면서 시절인연이 도래한다면 종도 여러분과 비단 태고종단이 아니더라도 한국불교중흥과 발전을 위하여 전법포교 차원에서 함께 하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구름처럼 물처럼 걸어온 수행납자의 길’을 출간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편백운 스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다. 지난 주말에 춘천 봉의산 아래 석왕사를 찾았다.

 

백운스님은 평소대로 사시 불공을 모시고 계셨다. “봉의산 자락 석왕사에 걸망을 내려놓은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석왕사에서의 일상은 한결 같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범종을 치고 아침 예불을 모시고 10시면 사시예불을 드리는 수행 납자로서의 의무는 일상생활입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고, 신도님들도 석왕사는 아침예불 사시불공을 일상적으로 올리는 것을 알아서 아침 예불에도 몇 십 명은 항상 참례했습니다.”라고 했다. 지금은 코로나 방역 때문에 혼자서 예불을 모신다고 했다.

 

백운스님은 일찍이 덕숭산 수덕사로 동진 출가했다. 큰 절에서 중이 된 다음에는 은사스님을 따라서 경허 스님이 견성하고 18년 간 보림을 한 서산 천장암에서 사미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속리산 법주사 승가대학 사교과와 팔공산 동화사 승가대학대교과를 졸업했다.

 

20대 중반에 이곳 봉의산 아래 석왕사에서 일종의 개척 포교를 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불교 포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이다. 백운 스님은 가는 곳 머무는 곳이 바로 부처님 도량이며 만나는 사람이 다 전법포교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곳 석왕사에서 정착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처음엔 석왕사에서 상상의 벽오동을 심고자 했단다. 봉황새는 벽오동이 아니면 내려앉지를 않고 둥지를 틀지 않기에 벽오동부터 심는다는 각오로 석왕사 도량을 가꾸었다고 한다.

 

어록집 말미에 ‘흰 구름 따라 걸어온 길을 뒤 돌아다보니’의 자전 에세이에서 석왕사에 걸망을 내려놓으면서 가수 김도향의 ‘벽오동 심은 뜻은’이란 노랫말을 싣고 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달맞이 가잔 뜻은 임을 모셔 가잠인데

어이타 우리 님은 가고 안 오시느뇨

하늘아 무너져라 와르르르르~

잔별아 쏟아져라 까르르르르

 

백운스님은 가끔 이 노래 가사를 읊조린다고 했다. “석왕사 도량에 벽오동을 심어 놓고 봉황새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이 가사에 한없는 매력을 느낍니다.”라고 했다.

 

 

석왕사에 처음 왔을 때의 이름은 숭덕암이었다고 한다. 신도는 12세대에 불과했는데, 절 이름을 석왕사로 바꾸고 10여 년 동안 열심히 정진한 보람으로 신도 세대수가 1천세대로 증가하여 신도 수가 수천 명으로 증가하여 법당이 좁아서 신도님들이 않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건축불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석왕사 모습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3천 여 신도가 마음을 의지하여 기도 정진하는 가람으로 변모한 것은 오직 한 결 같이 기도 정진한 보람의 결과라고 했다.

 

백운 스님은 약간의 기복신앙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철저하게 정법포교로 승부를 걸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불교교육 기관인 강원불교대학을 설립해서 5,6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유치원을 설립해서는 23년간 2,700여명의 졸업생을 키워 냈다고 한다.

 

백운스님은 2005년 2월 3일 그동안 개인 명의로 소유권이 등기된 토지와 건물 모두를 석왕사 신도들의 공유 재산으로 석왕사에 무상 증여하였고, 2020년 7월 27일 석왕사 신도회에서는 신도총회의 결의에 따라 ‘사단법인 대한불교 석왕사’ 법인을 설립하고 석왕사 소유로 되어 있는 토지, 건물 일체를 사단법인 대한불교 석왕사에 무상 출연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대웅전은 평수가 작아서 불편하긴 하지만, 대웅전 건축 양식이 사찰과 민가의 건축을 절충하여 지은 것이기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건축사에서 보기 드문 예로서, 첫째는 기둥과 벽채 석가래 부연 지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콘크리트로 신축된 건물이며, 둘째는 본 대웅전을 건축할 당시에는 진입도로가 없어서 신도들이 모래와 자갈 기와 등을 대로변에서 이곳까지 등짐으로 지고, 머리에 이고 운반하여 지어진 정성어린 건물이라고 했다. 셋째는 대웅전 내부가 향연기로 그을려 새까맣게 변한 것과 같이 그동안 수많은 불자들이 기도를 올리면 소원을 이룬다 해서 경향 각지에서 신도님들이 찾고 있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후보시절 참배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부인 김정숙 여사와 참배했다고 한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 최각규 전 국무총리, 함종한 전 강원 도지사, 김진선 전 도지사, 최문순 도지사님도 참배한 대웅전이라서 긍지를 갖는다고 백운 스님은 자랑했다.

 

백운 스님이 어록집을 발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26대 태고종 총무원장으로서 불철주야 애썼던 활동을 기록으로 남겨야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작은 욕심에서라고 했다.

 

백운 스님은 “중 벼슬은 닭 벼슬 보다 못하다”는 절집 옛 어른들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믿는다고 했다. 총무원장 후보 시절에도 최소의 비용으로 선거를 치루었고, 선거당일에도 석왕사에서 기도정진을 마치고 천천히 총무원에 당도했다고 한다.

 

“근소한 3표차로 당선됐지만, 이왕 총무원장에 당선됐으니, 최선을 다해 보자면서 밤잠 설쳐가면서 10년간 종단의 발목을 잡았던 종단부채를 취임 6개월 만에 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백운 스님이 총무원장을 하면서 태고종에 대한 문제점으로는 태고종의 경우 종회기능이 필요 없다는 것이며, 시대에 적응하는 새로운 태고종의 건설이었다고 했다.

 

태고종 제 26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백운스님은 “21세기에 적응하는 새로운 태고종을 건설해 보겠다는 의지와 희망으로 26대 집행부를 이끌어서 종단 부채를 상환하고 종단을 기사회생시킨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회에 세력이 없어서 결국 불신임이라는 불명예의 결과를 당하였고, 새로운 태고종 건설의 비전과 희망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26대 집행부는 종도들로부터는 결코 불신임을 당하지 않았다는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사실, 태고종은 지금과 같은 종회 기능은 필요 없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종회보다는 종도교육이나 연수를 통한 자질향상으로 사회와 대중으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성직자 상을 정립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봅니다.

 

태고종은 사설사암이 99%입니다. 총무원은 사설사암연합체로서의 역할이면 충분하고 요즘 같은 지방화 시대에는 교구 종무원이 더 활성화 되어서 지방 교구 종무원 중심으로 대사회 봉사와 복지 활동에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면서 종단 개혁을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백운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행정은 태고종은 사설사암이 모인 연합 불교단체이므로 중앙 총무원보다는 지방 종무원의 활성화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지금은 지방 자치 시대이기 때문에 각 사찰이 지역 기관과 협력을 해야 하고 지역에서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는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시대적 요청을 인지하지 못한 일부 종단 중진들의 인식 부족으로 구태에 집착하여, 중앙 총무원에만 집착한 결과 발전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총무원은 교육과 연수에 주력해서 종도의 자질향상과 종단 위상 제고에 진력한다는 것과 국제교류에도 힘써서 글로벌 종단을 건설해서 한국불교와 세계불교계에서 역할을 하는 종단으로 키워 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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