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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김진수 문화투데이 논설실장

지난 추석 전에 여행사의 1박2일 여행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백령도에 다녀왔다. 백령도는 청정해역에서 나오는 돌미역, 돌다시마, 까나리액젓 등 특산물로 유명하고 해산물에 못지않게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섬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필자는 대청도, 소청도, 백령도가 서해 북방에 있다는 정도만 알았지 그렇게 먼 곳에 위치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터미널에 대기하는 동안 백령도까지 쾌속정으로 4시간 반 정도나 소요되고 승선요금이 편도 7만3000원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백령도가 강화도 조금 위에 있겠지 하며 그리 멀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천 부근에 여행이나 다녀오자고 여행사에 신청을 한 것인데 무지의 소치로 인해 서해 최북단에 그것도 서해 NLL 근방인 북한의 황해도 바로 앞바다에 있는 먼 곳을 가게 된 것이다. 인천에서 백령도에 가는 선편이 쾌속정이 있기 전에는 20시간 넘게 걸렸다고 하니 여간한 맘을 먹지 않고서는 좀처럼 가기가 힘든 지역임에 틀림이 없다.

인천항을 벗어나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이르자 파도는 점점 높게 일어 여태까지 보지 못한 가장 높은 파도를 만나게 되어 나는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도착할 때까지 많은 고생을 했다. 거의 4시간이 지난 후에 배는 소청도와 대청도를 들려 승객을 내리고 난 후 오후 한 시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백령도의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다. 황해도 장산곶에서 15km 떨어져 있고, 인천 보다는 평양이 훨씬 가까우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이다. 백령면은 진촌리, 북포리, 남포리, 연화리, 가을리 5개 리에 민간인 4000여명과 군인을 포함하여 1만 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백령도는 본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곡도라고 했고 당나라로 통하는 중요한 해상교통의 요충지였으며 고려시대에 와서 곡도를 백령도로 개명하였다. 백령도의 원래 이름은 따오기의 섬이라는 뜻으로 곡도(鵠島)라고 했는데 섬의 모습이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고 하여 백령도(白翎島)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점심식사 후 버스를 타고 심청(沈淸)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고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印堂水)가 바라보이는 백령도 북쪽 심청각(沈淸閣)에 올랐다. 썰물과 밀물이 부딪쳐서 연못(溏)을 새긴 듯이(印) 소용돌이치는 바닷물(水)이라는 뜻으로 인당수(印溏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심청이가 용궁에 갔다가 인간으로 환생하여 돌아온 곳이라는 연봉(連峰)바위가 멀지 않은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었다. 

다음은 유네스코 보물 제391호로 등록되어 있는 사곶천연비행장에 내려서 해변활주로 4.4km를 걸어 보았다. 바닷물에 의해 해수욕장의 모래밭이 단단하게 다져 있어 버스 등 각 종 차량은 물론 비행기 활주로도 활용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이태리 나풀리와 함께 두 곳 밖에 없다는 사곶천연비행장은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도 이용되어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다음 행선지는 연화리에 있는 중화동교회(中和洞敎會)였다. 연세대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목사가 풍랑을 만나 백령도에 내려서 보름 동안 거주하며 선교한 교회로서 1898에 설립해 우리나라 최초로 세운 교회라고 한다. 교회 입구에 자리한 보기 드문 무궁화 고목은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토종 무궁화나무로서 마침 무궁화가 나무 전체를 화사하게 수놓고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조그마한 섬 백령도가 옛날에는 중국을 오가는 해상교통 요충지로서 중국을 경유하여 들어온 국내 기독교의 시발점이자 선진문물이 들어온 관문임을 알게 했다.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면 백령도는 우리에게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섬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남포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492호 콩돌해안도 들렀다. 길이 1.5km, 폭 50m의 자갈해변인 이곳은 콩알 크기의 작은 돌이 많다고 콩돌해안이라 불린다. 해안가 돌들이 오랜 세월동안 바닷물의 밀물 썰물에 닳고 닳아 형형색색의 자갈들로 변하여 해변에 온통 꽉 들어차 있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콩돌해안을 걸으니 시원하고 신선한 촉감이 발바닥을 통하여 온 몸을 전율하게 한다. 


뒤이어서 서해안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으로 향했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두무진의 절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과연 백령도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해변으로 직접 내려가 바위섬들과 절벽을 구경할 수 있도록 좁고 비탈진 계단으로 된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러한 육로코스 구경을 마치고 나서는 유람선을 타고 한 시간 동안 두무진 일대바다를 돌면서 기암괴석과 각종 형상을 조각한 듯한 해안절벽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람선에 올라 최고 높은 93m의 촛대절벽, 시루떡바위, 고로쇠열매바위, 낙타바위, 쌍굴바위, 잠수암바위, 분재바위, 부처님바위, 모자바위, 형제바위, 남매바위, 코끼리바위 등을 둘러보면서 가이드의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바위들의 형상에 맞게 그럴듯하게 붙인 이름들의 바위를 볼 때마다 기암괴석의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에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다물범들이 바위 위로 올라와 일광욕을 즐긴다는데 불행스럽게도 그러한 장면은 볼 수 없었고 가마우찌 떼들만 바위에 앉아 즐기는 한가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경의 섬으로 알려진 전라남도의 백도, 홍도, 흑산도를 둘러봤지만 백령도의 두무진도 여기에 못지않게 뛰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두무진의 경관이 빼어나므로 뱃길이 험하고 멀어도 많은 사람들이 백령도를 찾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했다. 

두무진에는 해변에 여러 횟집들이 자리 잡고 있어 유람선투어를 마친 후에는 백령도여행에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평소 좋아하는 광어, 우럭 등의 자연산회를 곁들인 만찬의 기회를 가졌다. 백령도에는 양식장에서 기른 고기는 없고 모두 자연산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귀가 솔깃해져서인지 회 맛이 일품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숙소로 돌아와 백령도의 즐겁고 노곤한 하루 일과를 전부 마감하였다.


백령도의 땅은 지질이 좋아서 메밀과 보리, 쌀농사가 농산물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특산물은 꽃게, 까나리액젓, 돌미역, 돌다시마,  전복, 해삼, 멸치, 농어, 우럭, 놀래미 등이 있다. 백령도에는 담장과 대문이 없어 인심 좋고 범죄 없는 섬으로 알려져 있고 주민들은 의외로 어업(10%)보다 대부분 농업(90%)에 종사하고 있다. 바주아리로 알려진 약쑥 등 특산물을 재배해 이를 특산품으로 제조해서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고 있고 음식으로는 메밀에 짠지를 넣은 만두와 메밀 칼국수 등이 먹거리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어선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꽃게 철에 꽃게가 잡히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여행 이튿날 오전 중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안함 침몰 46용사의 위령탑과 사곶천연비행장 활주로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으로 백령도의 모든 관광은 끝이 났다. 이제 문제는 돌아오는 뱃길이었다. 태풍 등으로 파도가 높고 기상이 악화되면 인천에 나오지 못하고 섬에 갇히게 되어 날이 좋아질 때까지 백령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기상악화로 우리 일행도 시간을 30분 당겨서 오후 1시 배편으로 출발해야 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서둘러 메밀 칼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용기포항구로 나갔다. 나는 여행사의 배려로 선실 1층의 맨 앞자리에 앉게 되어 바다를 훤히 내다볼 수 있어 좋은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소청도 해안을 벗어나면서부터 너울성 파도가 심하게 몰려와 선박은 위아래로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하였고 나는 현기증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배 앞을 내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배가 곤두박질 칠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울부짖는 소리가 온 배 안을 가득 메웠다. 평소 이 배로 왕래하는 섬사람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배의 흔들림을 즐기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수확이라면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수려한 곳이 있구나 하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두무진의 아름다운 전경을 카메라에 모두 담아 새로운 영상을 내 USB에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아울러 천혜의 백령도 바다가 선사하는 돌미역, 돌다시마, 까나리액젓 등의 한 아름 선물을 사가지고 와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백령도여행을 반추해 보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뱃멀미로부터 자유로운 육로를 통해서 맨 먼저 황해도 장산곶에 들려 옛 추억을 더듬으며 가까운 뱃길로 백령도를 다시 찾아보고 싶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전운이 감도는 불안한 정국이지만 나의 육로를 통한 백령도방문의 소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평화통일이 소리 없이 불현 듯 다가오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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