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구재숙 칼럼]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요즘처럼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스크 세상이 되고 보니, 말이 금(金)이 아니라, 자칫하면 화(禍)의 원인이 되는 것 같아서 모두들 조심하는 것이 최근의 사회 분위기다.

 

옛 속담에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니 수구여병(守口如甁) 하라’는 말이 있다. 구시화문은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고도 하는데, 입은 화를 불러 오는 재앙의 문이 될 수 있으니 입 조심하라는 뜻일 것이다. 

 

 사실, 최근 이 말처럼 실감나는 단어도 없을 것 같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말을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당장 코로나-19에 노출될 수 있어서 가능하면 입을 닫고 살아야 하는 답답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지 않으면 당장 위험에 노출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오나가나 코로나-19 이야기이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코로나-19가 화제다. 우리 같은 시니어들은 특히 코로나-19 감염에 쉽게 노출될 수 있어서 활동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 받고 있다. 

 

 사회분위기와 삶의 패턴이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바이러스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바이러스란 놈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인류를 농락하고 있는가? 바이러스는 다른 유기체의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만 생명활동을 하는 전염성 감염원이자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적 존재(반생물)라고 한다.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그야말로 정체불명의 도깨비 같은 존재란 말이다. 세상에 이런 존재도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지만, 바이러스의 존재는 분명한 실체이기 때문에 반생물적(半生物的) 존재임엔 틀림없는 것이다.  

 

초현미경적, 여과성 병원체이기도 하고. 증식을 위해서는 숙주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동물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에서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생물체를 감염시킬 수 있다. 생명의 진화 역사에 있어서 바이러스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어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했을 수도 있는 세포들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DNA(유전자의 본체)의 플라스미드 조각들로부터 진화했을 지도 모른다는데, 플라스미드는 염색체와는 별개로 존재하며 자율적으로 증식하는 유전자를 통틀어 이르는 것으로서 세포 내에서 다음 세대로 안정하게 유지되고 전달된다고 한다. 

 

 바이러스는 유전 물질을 운반하고, 생식하고,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하기 때문에 생명체의 한 형태라고 간주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명체로 분류하는데 필요한 주요 특성인 세포 구조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바이러스는 생명체로서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가장자리에 있는 유기체’ 및 복제 물질로 묘사되어 왔다.

 

바이러스란 이 정체불명의 존재가 이처럼 인류를 농락하고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삶이란 하나의 고통스러운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이한 존재인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이란 것이 또 있다는 데에 우리는 안심을 하게 된다.

 

백신은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약하게 만들어 인체에 주입하여 항체를 형성하게 하여 그 질병에 저항하는 후천 면역이 생기도록 하는 의약품이다. 병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백신을 주사하는 것을 예방 접종이라고 한다.

 

백신은 병원체의 상태에 따라 완전히 병원체를 죽여 만드는 사백신과 약독화시켜 만드는 생백신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데, 약독화한 생백신은 대부분 바이러스이지만 간혹 세균도 있다. 사백신은 바이러스 또는 세균 전체를 죽여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만을 분획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 같은 시니어들에게만이 아닌 모든 국민, 더 나아가서 전 인류에게 코로나 19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 예방이지만, 백신 예방접종 주사를 맞는 것이 급선무이다. 백신이 몇 가지 개발돼서 벌써 접종이 시작됐는데, 우리에게는 언제나 백신이 접종이 가능하게 될지 이 또한 일상의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로부터 비교적 안전지대라고 한 것은 그만큼 방역을 초기에 잘 대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들 방심한 사이에 3단계까지 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불안에 떨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안이한 대처 때문이라고 본다. 백신이 조속히 수입되어서 예방접종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선 당장은 예방이다. 

 

이럴 때, 우리는 고려 말기의 고승인 나옹 선사의 시, ‘청산은 나를 보고’를 떠 올리게 된다.           

 

청산혜요아이무어(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혜요아이무구(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료무애이무증혜(聊無愛而無憎兮):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여수여풍이종아(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청산혜요아이무어(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혜요아이무구(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료무노이무석혜(聊無怒而無惜兮):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여수여풍이종아(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물론 이 시는 무욕(無慾)한 삶을 살라는 출가 스님의 탈속(脫俗)한 무심(無心)의 청정무구한 교훈이지만, 세속에서 삶과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오늘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시가 아닌가 한다. 사랑도 성냄도 잠시 접어 두고, 말없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면서 조용히 앉아서 이 시를 읊으면서 마스크를 벗어 놓고 나 홀로 커피 한잔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NEWS

더보기

배너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