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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니어TV-구재숙이 만난 사람]'제천의 아들' 이근규 전 제천시장

민중의 몸으로 백성을 지킨 의병의 숨결을 기리며
제천의병 8.15 천남전투 승전일 맞아...제천은 민족적 자긍심을 가진 고장으로 민족사 표본과 같은 곳
한강의 어머니인 충주댐은 남한강의 발원지로 한강의 수계를 1m 낮추는데 기여

 

[뉴시니어 = 구재숙 기자] 대한민국 제천시는 의병의 발상지다, 뉴시니어 구재숙 사장은 대한민국 의병도시협의회 1대와 2대 이근규 회장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근규 회장과 일문일답.

 

Q: 우리 역사속에서 의병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의병은 임진왜란때 부터 존재했다. 우리나라에 많은 외침이 있었을 때에 우리 백성들이 일어나서 외세에 저항하는 모든 행동들을 모두 의병운동이라고 한다.


오늘은 구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주권을 침탈 당하던 그 시기에 맞서 싸웠던 우리 백성들의 항일 항쟁들에 대한 의병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Q: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의 애국 애족운동이 바로 의병운동 이라는 것인가?

 

A: 그렇다. 구한말인 1895년에 국모인 명성황후가 일제가 보낸 자객에 의해 시해 되면서 땅에 떨어진 민족적 자긍심, 민족의 아픔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서 일본에 의한 침략행위 또는 당시의 사회적 모순들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백성들의 항일, 반 외세운동,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들이 의병운동이다. 그것이 결국 민족적 자존심을 우뚝 세우게 됐고 그러한 활동들이 만주와 연해주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쳐가는 기반이 되는 일로 연결됐다.     

 

 

Q: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로서 그러한 의병활동과 정신들이 어떻게 이어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A: 명성황후 시해 이후 의병활동이 시작되고 그 발상지가 제천이다.

  제천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했던 의암 유인석 선생이나 운강 이강연 선생 등 의병장들이 제천 태생은 아니지만 당시 화서학파를 중심으로했던 유학자들과 유생들이 봉기하게 되고 전국적인 의병운동을 통해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가는 초석이 됐다.

 

사실 그 시대에는 반상사회가 존재했고 양반과 일반 백성들이 구분돼 있던 반상사회 구조로부터 아무런 국가적 사회적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비 기득권층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지켜냈다.

 

이후 항일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되고 세계사 속에 자랑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의병정신이 이 나라 이 땅 이 민족을 우리가 지킨다고 하는자존의 정신으로 이어지게 됐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700여 건의 외세의 침략이있었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왕이나 훌륭한 장수와 영웅들도 있었지만 사실 자세히 들어가 보면 그 전쟁, 그 시련을 맞아 실제로 희생하고 헌신했던 분들은 모두 우리 백성들이 주측이 되어있었다는 것이 많은 자료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의병운동이야 말로 우리나라가 세계사 속에서 경제문제나 외교 안보 특히 분단국가로서의 아픔들을 겪어왔지만 국민들의 힘 으로 잘 이겨내고 있고 요즘 코로나 19 사태만 해도 WHO 가 인정하듯 전세계 에서 가장 모범적인 최우량 대처국가로 알려져 있다.

 

제천의병활동을 얘기할 때 천남전투를 말할 수 있다. 제천시청 옆 천남이라는 계곡이 있다. 그 곳이 왜병이 충주로 부터 제천으로 쳐들어 오는 첫 번째 길목이었다. 당시에 그 곳에서 첫 전투를 벌이게 되고 우리 제천의병들이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워서 왜병들을 모두 섬멸하는 승전보를 올리게 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그 날이 8월 15일이다. 그곳에서 패배한 왜병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농기구, 화승총 정도로 무장한 의병들에게 패배했다는 지존심에 상처를 받게됐다. 자존심이 상한 왜병은 그로부터 약 1주일 후 엄청난 화력을 앞세워 다시 쳐들어 오게 되고 열악한 의병들은 그 곳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또, 왜군들은 의병의 본거지인 제천을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겠다고 시내 전역을 불질러 버린다.

 

그런 아픈 역사를 딛고 다시 우리 제천시민의 힘으로 건설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제천에 이르렀다. 제천의 의병이나 의병 정신을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단합해서 끈질기게 투쟁해서 반드시 성취하고 이겨내는 그러한 우리 민족사의 상징이다.

 

 

Q: 제천시장도 역임하지 않았나. 제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돋보인다. 제천에 대한 단상은 어떠한가? 

 

A: 제천은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점말동굴 이라고 하는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한반도의 인류문화에 대한 원류를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제천이며 또한 청풍호의 황석강가에서 고인돌이 발견되어 인간의 장례문화 등 인류문화 역사의 중요한 사료들이 발견됐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문화의 원류가 여기 제천에 있다 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는 삼한시대 때 의림지를 축조해서 당시 농경문화의 혁명으로 상징되는 곳이 제천이다 라는 생각도 든다. 그 곳에 충주댐이라는 다목적 댐 인데 그것이 한강의 수계를 1m 낮추는데기여 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홍수를 막는 역할 뿐 아니라 2500만 수도권 시민의 식수원을 제공한다. 우리민족의 젖줄인 한강의 어머니, 남한강의 발원지로서 수도권 시민들을 먹여주고, 키워주고, 함께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다.

 

 

Q: 제천의 아들로 유명하다. 과거 제천의 모습을 말해달라.

 

A: 본래 제천시는 면 단위 였다.

  나는 송학면 시곡리 깊은 골 이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요즘말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촌놈이다.

 

제천시가 그동안 역사속에서 많은 중요한 역할을 해온 지리적인 측면이 있다면 천연물과 약재산업, 먹거리를통해서 국민들에게 기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첨단과학시설이 아무리 발전해 가도 사람이 건강하고, 활기가 있어야 4차 산업도 영위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먹거리와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져 있고 요즘 코로나 19로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관광의 거점도시다 이렇게 생각하며 제천이 우리나라 정치경제 사회문화 전방위에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제천에 대해서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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