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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문화기행> 대마도 역사여행

서울 근교 청계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나무에 걸려있는 대마도여행 광고전단을 보게 되었다. 평소 대마도는 아주 먼 곳으로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부산에서 50Km의 가까운 거리이고 노 비자, 저렴한 여행경비와 1박2일간의 짧은 여정이라는 매력에 절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가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에서 여행사를 찾아 신청을 했는데 마침 메르스 발생사태가 해외여행에 걸림돌이 되었다. 중국은 한국여행객에게 입국을 제한했으나 일본은 그러하질 않아서 다행스럽게도 대마도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됐다.


출발 전날 우리 일행은 부산에 내려가 자갈치시장을 돌아보며 생선회로 항구도시의 정취를 만끽한 후 일박을 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을 찾았다. 해외여행을 항공기로만 다니다가 선박을 이용하는 것이 무척 맘을 설레게 했다. 부두의 여객터미널은 공항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여행자도 그리 많지 않아 맘이 편하고 더욱이 시내 중심가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어 마치 국내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출발시간이 되어 부산항을 빠져나오자 여객선은 바다 물길을 가르며 고속버스처럼 빠르게 바다 위를 떠 미끄러지듯 달렸다. 푸르던 물빛이 점점 깊이를 더하자 어느새 물빛은 현해탄의 이름에 걸맞은 검은 색으로 변하고 파도는 더욱 거세어지기 시작하였다. 사방에 뭍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한 복판에 이르자 가끔씩 지나가는 대형 선박만 보이고 배 밑에는 출렁이는 바다물결과 하늘에는 흰 구름만이 보일 뿐이었다.


부산을 출발한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하늘과 바다 사이를 빠르게 오르내리는 바다제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 대마도가 희미하게 물 위에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산등성이가 뻗어 내린 대마도를 보자 모두들 신기한 듯 창가로 몰려나와 환호하였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육지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클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갔다.


여객선은 쓰시마 북쪽 작은 항구인 히다까츠 항으로 입항했다. 배에서 내리자 좁은 입국사열대에서 여행객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열 감응 카메라 앞에 메르스 환자여부를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더위를 견뎌야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모두들 땀범벅이 되어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왔을 때 여행가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히다까츠 항은 아주 깨끗하고 아담한 항구로 배가 몇 척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항구였다. 옛날 한국과 일본의 바닷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대마도는 얼마나 고마운 섬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히다까츠 항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항해 중에 태풍 등의 재난을 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항구로 보였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식당으로 안내했고 종업원 아주머니들이 무릎을 꿇어앉아 친절하게 일일이 목례를 하며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일본식 전통 우동이며 초밥 등이 정갈하여 미각을 돋우었고 한국 사람들의 식성에 맞게 해산물과 쇠고기샤브샤브까지 곁들여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 한 번 거쳐 가는 여행객들인데도 불구하고 음식을 차리는데 정성을 다하고 음식량도 충분하여 우리나라처럼 큰 소리로 외치며 종업원을 부를 필요가 없었다.


대마도 여행객은 주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전망대, 신사 등의 유적을 둘러보는 역사기행이거나 등산, 낚시 등의 취미여행 아니면 부산에서 일본상품을 사러 오가는 여행객들로 보였다. 우리 일행은 고대 한일 간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유적을 둘러보는 코스로서 20여명이 미니버스 한 대에 타고 대마도의 북쪽에서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 향하면서 이름난 유적지를 탐방했다. 가이드는 50대 중반의 부산출신 여성으로 한일 고대사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숨은 고대역사를 배울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기회였다. 대마도는 빼어난 경관을 구경하러 오는 데라기보다 고대 한일 간의 중간역할을 한 지역의 역사현장을 둘러보러 오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1박 2일 간 우리가 들린 대마도 주요 명소로는 바닷물이 맑은 미우다 해변, 리아스식 해안을 조망하는 에보시 전망대, 부산이 보인다는 팔각정의 한국관, 러시아함대를 격파한 만제키바시 해협, 그리고 와타즈미 신사, 시내의 팔번궁 신사와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객사와 사찰, 덕혜옹주 기념비가 있는 가미자카 공원 등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눈을 가장 크게 뜨도록 만든 것은 고대 한반도에서 나라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가다 처음 도착한 대마도에서 실향민들의 애환을 담은 와타즈미 신사였다. 일본의 총리나 위정자들이 이차대전 때 전범들 위패를 안치한 신사를 걸핏하면 참배하여 신사에 대한 나쁜 선입관을 가졌는데 금번 대마도의 와타즈미 신사를 보고나서는 신사에 대한 나의 나쁜 선입관이 바뀌게 됐다.


삼나무와 대나무의 울창한 숲을 지나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한 아타즈미 신사는 뒤쪽의 입구로 걸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와타즈미 신사는 5개의 도리이 중 2개가 바다에 세워져 있고 만조 시에는 2m까지 잠기기도 하며 일본 내에서는 최고의 해궁신사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건국신화와 관련되어 있어 본토 전역에서 참배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도리이 5개의 방향이 모두 서북쪽인 우리나라를 향해 있다는 것이다. 대마도의 설화에는 가야인들이 대마도에 건너와서 신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나라가 망하고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고향땅을 다시는 갈 수 없음을 한탄하고 그리움 속에 도리이가 가리키는 서북쪽의 먼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얼마나 눈시울을 붉혔을까 생각했을 때 맘이 찡하기만 했다. 그러나 대마도가 일본을 가는 중간 기항지임을 감안할 때 어찌 가야인들만 그러했겠는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백제, 고구려 유민들 역시 이곳을 지나가면서 이곳 신사에 들려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건국신화를 보면 한반도에서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이잔백제의 왕비인 이자너미(우리말 이잔 어미) 일본건국의 전설적인 인물 신공황후와 왕자인 이자나기(우리말 이잔 아기) 일본의 초대 응신천황이 대마도에 피신하면서 가야인이 세운 이곳 와타즈미 신사에 일본의 건국설화를 남긴 것으로 짐작이 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The study of history)’라는 저서에서 인류의 역사는 순환한다고 하였다. 대륙과 한반도를 지배했던 고구려가 일본열도를 포함한 천하를 통일하여 백제, 신라, 왜로부터 조공을 받은 적이 있고 그 뒤에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이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을 때에도 일본에 문화를 전수하는 등 한반도를 지배한 국가와 일본은 밀접한 관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세사에 들어와서 일본이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군사강국이 되어 세계열강 대열에 합류하면서 거꾸로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식민지로 지배한 것을 보면 역사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쌍방향으로 오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사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가야, 백제, 고구려 유민들이 일본이란 나라를 건국하고 지배해 온 사실이다. 와타즈미 신사는 한국으로 치면 소원을 비는 서낭당 같은 곳으로서 신사 내에는 소원을 적은 쪽지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한국보다 더 한국다운 곳이 일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부강한 경제력과 강한 군사력을 갖춘 강대국이 됨으로써 열강들의 이웃나라에 대한 제국주의식 강점추세에 따라 일본은 한국과 중국대륙은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식민지로 삼았다. 그 이후 일본은 한반도와 대륙과의 고대 주종관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역사를 왜곡하여 오히려 임나가야설 주장 등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합리화시키고 있다. 한국, 중국 등과 함께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일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 세운 나라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접국가에 대해서는 과거 식민지지배 통치를 사과하고 인접국가와 함께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국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일 간의 평화관계에 암운을 드리우리라고 예상되는 것은 현재 아베총리가 일본의 양대 사무라이 막부 중 평가 후예라는 사실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백제계의 평가(平家)로 조선침략을 감행한데 반해 전쟁을 반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신라계의 원가(原家)에 속한 인물이란 것이다.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 원가막부는 조선통신사절단 등 조선과의 문화교류에 힘을 썼으나 다시금 1860년대에 평가막부로 권력이 교체된 이후 일본은 메이지유신 등의 일본근대화를 가져오면서 조선과 중국보다는 서양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됐다. 한발 더 나아가 조선과 중국대륙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으며 오늘날은 그 연장선상에서 평가의 후예인 아베총리가 집권세력으로 들어서 한일 간의 우호관계를 해치고 있다.


지나온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점칠 수 있는 혜안을 가져다주므로 과거의 역사를 교훈삼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일 간의 관계는 평가의 아베총리 대신에 친한파인 원가 소속의 인물로 교체될 때 개선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러나 향후 2년간 아베총리가 다시 연임한다는 불길한 소식은 한일 간의 관계정상화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단순히 산천을 유람하고 풍물을 구경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의 현장을 찾아본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조그마한 섬 대마도가 무슨 볼거리가 있겠는가 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고대 한일 간 역사의 흔적들이 잘 보존된 유적들을 둘러보면서 한일 고대사에 대해 깊은 내용을 알게  됐다.


그 옛날 한반도와 일본열도 간에 오간 인물은 온 데 간 데 없으나 지금도 현해탄 물길은 한일 간의 오가는 통로로서 그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고 옛 역사의 현장임을 침묵으로 말해 주고 있다.


아무리 일본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여행 중에 별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외국이다. 여객선이 현해탄을 건너 부산 항구에 들어온 순간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짧은 1박2일 동안의 대마도 여행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역사기행임에 틀림이 없다.


대마도 여행을 마치면서 한마디 말을 부연한다면 과거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존재한 국가가 상호 공동운명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와 미래에도 근린국가로서 우호적인 관계의 역사를 써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함께 열어가는 동반자로서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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