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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숙 소설가 칼럼> 도라지 예찬

옛날 옛적에 깊은 산골 외딴집에 사는 노부부에게는 ‘도라지’라는 어여쁜 외동딸이 있었다. 어느 날 뒷산 길목에서 나물을 캐던 도라지는 언덕바지 돌부리에 걸려 미끄러졌는데….
 

잠시 기절을 했던 듯, 눈을 떴을 때는 낯선 총각의 눈과 딱 마주쳤다. 너무 놀란 도라지는 벌떡 일어났으나 비틀거려 다시 총각의 무릎에 주저앉고, 총각은 얼결에 그녀를 보듬었다. 그들의 만남은 숙명인 듯, 수줍은 도라지와 약초 캐는 산골총각의 사랑은 그렇게 싹이 트면서 저녁놀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집에서 딸자식만 기다리던 부모님은 도라지를 찾아 나섰다가 산골총각과 나란히 앉아있는 걸 보고 기가 찼다.무조건 잡아끌어 집으로 데려다 놓고 금족령을 내렸지만 걱쩡이 태산이었다. 그날 밤 부부는 도라지가 시집갈 때가 되어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필 부모도 없이 뒷산 움막에서 약초나 캐다 파는 총각에게는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신랑감을 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결혼식 날짜까지 정했지만 도라지의 속사정은 아무도 몰랐다.
  

도라지는 그날 이후 총각이 너무 보고 싶어 애를 태우며 매일 눈물만 흘렸다. 결국 결혼식을 나흘 앞둔 봄날 아침 숨을 거두면서 유언 같은 한 마디를 남겼다. “제가 죽거든 뒷산 길가에 묻어 주세요.” 아버지는 딸의 말을 듣고서야 상사병을 앓았다는 걸 알고, 죽은 영혼이나마 총각을 볼 수 있는 뒷산 길가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도라지의 무덤에서 이름 없는 보랏빛 꽃이 피어났다. 그다음 해에도 도라지 무덤에서만 보랏빛 꽃이 피어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보라색 꽃을 도라지꽃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도라지는 여름마다 산이나 들, 볕이 좋은 곳이면 어디에서나 흔하게 꽃을 피워낸다. 대부분 도라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도라지꽃은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그래도 어디선가 한두 번 정도는 마주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냥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어느 시골집 마당이나 들판 같은 곳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꽃이라 흔하다면 흔해서 눈에 익숙한 꽃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그 익숙한 꽃이 도라지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강화로 이사를 와서였다. 그날은 늘 다니던 산책길을 뒤로 하고 반대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사방을 둘러보다가 멀리 밭두렁 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보라색 꽃들을 보았고, 가까이 다가섰을 때는 거의 황홀경에 빠져 넋을 잃었다. 마침 지나가는 어르신에게 무슨 꽃밭이 이렇게 예쁘냐고 물었더니 꽃밭이 아니라 도라지밭이라고 했다. 그분이 도라지꽃도 모르냐고 타박을 하는 바람에 불쑥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났다. 생각해 보니 가끔 도심 꽃집이나 어느 사무실 꽃병에서 몇 번 마주했던 꽃이었다. 
 

그날 이후 도라지꽃을 좋아하게 되면서 도라지가 우리 몸에 아주 유익하고, 특별히 좋은 효능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방에서는 길경(桔梗)이라고 하여 신경통과 편도선염 등의 약재로도 쓰이고, 우리가 섭취하는 도라지의 뿌리에는 인삼과 홍삼이나 마찬가지인 샤포닌이 들어있다. 이 샤포닌은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고, 항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도라지에는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효능도 있어 혈관계 질환 및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다. 그뿐 아니라 호흡기 질환이라 할 수 있는 감기는 물론 천식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이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나 노인들, 그리고 잦은 스트레스로 인해서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들에게는 특히 권하고 싶다. 
 

도라지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특유의 쌉쌀한 맛을 좋아하지만 도라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특유의 쓴맛을 싫어한다. 그래도 실상을 알고 보면 그 맛이 강할수록 좋은 도라지라고 하니,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도라지를 무치기 전에 설탕, 식초, 소금을 넣은 물에 1시간 정도 담가두면 쉽게 도라지의 쓴맛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도라지를 손질할 때 나오는 잔뿌리들도 버리지 말고 꿀에 담가 도라지청을 만들어 겨울철 뜨거운 물에 타서 차처럼 마시면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감기 예방에도 좋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도라지 손질을 하거나 무칠 때 주물주물 해주면 쓴맛이 빠진다고 하는데, 과하게 주무르면 도라지의 좋은 성분인 사포닌까지 빠져나간다고 한다. 무엇이든 적절히 하는 중용의 도가 요리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도라지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성실, 유순함이라고도 한다. 봄과 가을에는 그 뿌리에 품은 향과 효능으로 우리의 식탁과 몸을 챙겨주고 여름에는 고운 자태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거기에 우리 민요 도라지타령도 빼놓을 수가 없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신 산천에 백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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