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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스님 칼럼> 뉴시니어를 위한 건강과 장수 비결은 무엇인가-③

몽골제국 칭기즈칸과 신선 장춘진인의 만남

대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은 인생무상의 허무함을 느낀 어느 날 
당대 제일의 신선인 장춘자를 불러, 오래 사는 특별한 비법을 묻자
오래 사는 불로 장생법 따로 없고, 무위자연 도리로 무욕으로 살아야 
살생을 자제하고 육식 많이 하지 말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섭생 당부 
신선의 진솔함에 감동한 칭기즈칸, 점령지내에서 도교 전파하라고 허락

 

역사상 강대한 제국을 건설한 영웅가운데는 칭기즈칸이 단연 으뜸이 아닐까 한다. 칭기즈칸에 대해서는《몽골비사(蒙古秘史》란 책이 있는데, 《원조비사(元朝秘史)》라고도 한다. 몽골인들에게는《몽고원류(蒙古源流)》,《황금사(黃金史)》와 함께 3대 역사서로 애지중지한다. 《몽골비사》는 칭기즈칸이 1227년에 죽은 다음 몽골 왕실 가족들이 저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몽골비사의 내용은 칭기즈칸의 22대 조상 부르테 치노와 코아이마랄로부터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를 기록한 것이지만, 칭기즈칸에 관한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테무진(칭기즈칸)의 근원(조상)과 어린 시절에서부터 테무진의 죽음과 오고타이(칭기즈칸 3남)의 통치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몽고원류(蒙古源流)》는 17세기 중기에 저작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몽골 민족의 연대기 중의 하나이다. 《蒙古源流》는 몽골불교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몽골불교역사서이기도 하다.
 

이런 종교적 전통을 가진 몽골인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적이었다. 칭기즈칸만 하더라도 샤머니즘과 텡그리즘(하늘)의 영향을 받고 성장했고, 대칸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면서 유라시아를 누볐지만, 그의 종교관은 일관되게 샤머니즘과 텡그리즘의 영향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이었고, 불교의 고승과 도교의 신선을 만나서 대담을 나눈 기록이 전하고 있다. 
 

칭기즈칸이 몽골초원에서 중국을 비롯한 유라시아를 정복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만나보게 되었고, 전쟁 중이었지만 그는 다른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하고, 1214년에는 해운(海雲)이란 고승에 대해서 듣고서 만나기도 했지만,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안했던 것 같다. 칭기즈칸은 이슬람의 지도자도 만났다고 했지만, 그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도교의 장춘(長春)이라는 도교의 지도자였다. 
 

칭기즈칸은 불교고승과 유교의 지도자에게도 관심을 갖기는 했으나 칭기즈칸은 그가 죽기 전에 도교의 신선 장춘을 만나고자 해서 장춘은 칭기즈칸의 서정(西征)의 전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장춘은 본명이 구처기(丘處機 1148〜1227)로서 도교 종파인 전진교(全眞敎)의 도사(道士)였다. 자는 통밀(通密)이며, 장춘자(長春子)는 전진교에서 받은 도호이며 장춘진인(長春眞人)은 그 존칭이다. 산둥성 서하(棲霞)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전진교의 개조 왕중양의 제자 북칠진(北七眞) 중의 한 명이며, 왕중양, 마옥, 담처단, 유처현에 이어 전진교의 5대 장문이었다. 전진교 용문파(龍門派)의 개조이기도 하다. 원나라 때 전진교를 융성시킨 것은 구처기의 공적이 크다고 하겠다. 
 

1222년에 서아시아 원정 중이었던 칭기즈칸의 초청을 받아 고령에도 불구하고, 제자인 이지상 등과 함께 멀리 서역까지 여행을 하여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칭기즈칸을 만났다. 불로장수의 비결을 묻는 칭기즈칸에게 전진교의 가르침을 설명하였고, 칭기즈칸은 이에 보답하여 장춘진인에게 몽골 제국의 점령지 어디서라도 전진교를 보호하는 특혜를 베풀어 주도록 약속했다. 


제자 이지상이 정리한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및 《현풍경회록(玄風慶會錄)》은 그 서역 여행 때의 기록이고, 장춘진인 일행이 거쳐 간 당시의 몽골고원 및 중앙아시아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현재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장춘은 서역에서 귀국 후 연경(북경)에 있는 장춘궁(천진관)에 살면서 폭넓게 대중의 신앙을 모으고, 칭기즈칸이 죽던 해에 생을 마쳤다.
 

이상의 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이 칭기즈칸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이었다. 칭기즈칸이 60세가 넘어서 장춘자(長春子)를 전장에서 만나기를 원했던 것은 아마도 인생무상을 느끼고 뭔가 정신적인 공허를 메워보려는 인간적인 욕망이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도사인 장춘자도 칭기즈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위자연의 도리로서 무욕밖에 더 설명했겠는가. 여행기를 읽어보면 장춘자는 칭기즈칸에게 살생을 금하고 동물을 애호하고, 섭생을 권했다. 장춘자 자신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이였기에 육식을 하지 않고 뭔가 고상한 풍모로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칭기즈칸이 장춘자로부터 다소의 감명을 받아서 마음에 위안을 느꼈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칭기즈칸은 비록 그의 당대에 불교의 고승과 도교의 도사를 만나서 뭔가 정신적인 것을 얻으려고 했지만, 그는 몽골인들의 전통 종교적 관념을 떠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야수성을 지닌 그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도시들을 파괴했지만, 말년에 이르러서는 무엇인가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참회하는 마음에서 불교의 고승과 도교의 도사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려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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