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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그라미가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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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는 옷에 대해 비교적 까탈스러워 출근할 때마다 다른 옷이 없냐며 아내가 불편하게 옷 투정을 하는 편이다. 이것도 내림인지 어릴 적의 딸을 유심히 보면 딸도 나처럼 새 옷만 좋아해서 학교 갈 때마다 옷 투정을 해 나의 유년시절을 보는 것 같아 피는 ‘못 속이는구나!’ 하고 자주 빙그레 웃곤 했다. 


나는 옷과의 사연에 아내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복지부 공무원 초임시절 가족계획업무를 담당했는데 정부의 가족계획시술과  홍보를 맡고 있는 가족계획협회에서 ‘가정의 벗’ 월간지에 ‘행복’이라는 주제로 원고청탁을 받아 기고한 적이 있었다. ‘연두색 원피스’라는 제목인데 기고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육사졸업 후 전방에 배치 받아 동원예비군 교육을 하는데 교육생 중 생도 때 은사인 독일어교수를 만났다. 교수님은 주변에 내 제자라며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교육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데 자기 집인 방배동 아파트에 초대를 했다. 교수님은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여 가족이라곤 부인 하나뿐인데 마침 임신을 해서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장독대에 엎드린 부인의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는 애기를 했다. 나도 결혼을 하여 아내가 임신을 하면 반드시 연두색 원피스를 사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세월은 어느덧 흘러 애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아내가 황혼이 물든 저녁하늘 아래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장독대에 엎드린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 옷은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옆집 재봉틀로 손수 지어 입었다는 대답을 했다. 비록 내가 잊어버려 옷을 사주지는 못했지만 나도 은사님처럼 가족을 가지게 되었으니 아! 이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라는 내용이다. ‘가정의 벗’이 발간된 뒤 나는 미혼여성들로부터 많은 동정을 받아야 했다. 사무관총각과 결혼이 꿈이었는데 사무관봉급으로 그리도 살기가 힘드냐며 실망했다는 비난성 항의들이었다. 그 글을 읽고 난 이후부터 아내는 나의 옷 투정에도 비교적 관대해 보였다.


지난 6월 여름이 시작될 무렵 아내는 나를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옷 투정 소리를 듣기 전에 미리 입을 막으려는 심산이었다. 입던 셔츠와 바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하나 장만할 때가 되었다며 값비싼 브랜드가게로 갔다. 나는 붙어있는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이 정도 브랜드는 입어야 한다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우리형편에 고가브랜드 옷은 사치라며 나는 고집을 피웠고 결국 다른 가게로 가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중저가 브랜드 옷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옷의 브랜드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어서 평소에 내가 무슨 브랜드 옷을 입는지 잘 모르고 아내가 사주는 대로 그냥 입고 다녔다. 그래서 옷장에 걸려있는 옷이 오래되거나 조금 낡았다고 생각되면 헌 옷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새 옷을 찾았다. 그런데 지난번에 새로 산 옷이 입기도 불편하고 옷 스타일도 좋지 않아 몇 번 입은 후에는 입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옛날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옷에 달려있는 브랜드를 보고 또 깜짝 놀랐다. 그 브랜드는 지난번 백화점에서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는 바로 그 상표였다. 


나는 옷을 고르는 능력이 부족하여 어쩌다 내 맘에 드는 옷을 하나 골라 사오게 되면 아내로부터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옷의 색깔을 고를 때는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으로 디자인만 괜찮으면 무조건 사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아내가 고르는 색깔은 나와는 영 딴판이다. 원색의 색깔은 찾아볼 수가 없고 색상이 칙칙하고  선명하지 않은 것만을 고른다. 문제는 내가 산 옷은 몇 번 입고 나면 금방 싫증을 내어 다시금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는 옷을 사는 것은 아예 아내에게 맡겨야만 뒤탈이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비단 옷을 고르는 데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하고 처제가 왔을 때 동서한테 넌지시 떠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형님! 남자가 여자의 말을 듣는 것이 가정도 편하지만 현명한 처신입니다.’라는 것이었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하고 나는 안심이 되었다. 젊은 날에는 내 멋대로 살아도 큰 실수가 없었는데 지금부터라도 아내의 말을 들으면 실수를 하지 않겠구나하고 맘을 바꿔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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