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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스님이 만난사람-혜민스님>지리산 청학동 박단골에 대형 수행도량 건립

청학동 도인촌 댕기 머리 소년이 박단사 절 세우고 수석박물관도 열어

본래 청학동이라고 하면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도인들이 사는 이상향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여러 명산에는 도인들이 살았던 청학동의 전설이 조금씩 남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청학동 하면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에 있는 도인촌을 지칭한다.

 

청학동은 지리산 줄기에 있으며 예로부터 물과 돌이 함께 있는 천석(泉石)이 유명하다.

 

현재 청학동 도인촌은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갱정유도는 단군계 신흥종교로 일명 일심교라고도 하는데, 그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동서학 합일대도 대명다경 대길유도 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남원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지리산 청학동 도인촌에는 수련소가 있다.

 

 

지금 소개하려는 혜민스님(본명 정재홍, 59세)은 이곳 도인촌 마을에서 태어나서 이곳 청학동 서당에서 대학 중용까지 배웠다. 네 살 때부터 서당에 다녔다고 한다. 그때 학동(學童) 30여 명이 서당에서 글을 읽었다고 한다.

 

 

요즘 트로트 가수로 뜨고 있는 김다현의 아버지 김봉곤 훈장이 혜민스님의 서당 후배이다.

 

 

갱정유도회는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이 중요했고, 신도는 한복에 푸른 조끼를 입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늘어 뜨렸다. 성인이 되면 옛 선비들처럼 상투를 틀고 큰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다. 자녀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냈다.

 

현대문명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던 점이 갱정유도의 큰 특징이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도인촌은 관광지가 되어 있다

 

 

박단사 주지 혜민스님은 14세까지 이곳 도인촌 서당에서 공부했고, 전북 부안 월명사로 출가했다. 이때 일화(日花)라고 하는 노장 문하에서 불경을 읽고 참선을 하면서 몇 년 있었는데, 부모님들이 찾아와서 삭발염의를 극구 반대하여서 머리를 그대로 기르고 있었으나, 이마저 부모님의 반대로 다시 도인촌에 와서 몇 년 살다가 끝내는 불문에 귀의하여 스님이 되었다.

 

제방의 사찰에서 수행 정진하고 몽골 티베트 네팔 사원에서 활동하다가 11년 전부터 이곳 도인촌 박단골에 박단사(하동군 청암면 청학로 2554-13)를 세우고 수행정진하고 있다.

 

혜민스님은 지난 11년간 오직 앞만 보고 불사에 집중해 왔다는데, 현재 10,000평 부지에 대형 사찰을 건립하고자 원을 세우고 불철주야 정진하고 있다. 도인촌이 관광촌으로 변했기 때문에 박단사도 대형 관광사찰로 건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현재 불사가 진척되고 있지 않지만, 코로나가 종식되는 순간, 건립 불사가 재개될 것이라고 했다.

 

박단사는 관광사찰로서 수석박물관 등 볼거리를 제공하고, 박단사 뒤편 7,000평 부지에는 총림 수행도량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했다. 불문에 귀의했지만 제대로 교육과 수행을 할 기회가 없는 남녀 스님들에게 개방하여 출가수행자로서의 전통수행방식에 따라서 체험할 수 있는 수행처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산청군 시천면 임야 18만 평 부지에는 수목장을 설립하고 스님들을 위한 부도 수목장으로 1만 평을 조성할 것이라고 했다.

 

 

혜민스님은 지난 16년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근교 나쥬르 메모럴 스쿨에 매년 5만불씩 지원해 오고 있다. 초중고생 700명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혜민스님은 이밖에도 밀양과 철원에도 불사를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혜민스님은 ‘사회복지법인 혜민복지재단’을 설립해서 철저하게 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모든 재산은 복지법인 소유로 되어 있다.

 

혜민스님은 그동안 100일 기도를 세 번 했으며, 지금도 박단사 석불에게 매일 기도정진 발원하고 있다.

 

청학동 도인촌 댕기 머리 소년이 문명과 단절하면서 살았던 옛 추억을 생각하면 웃음도 나오지만,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하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던 조선시대의 소년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알게 되니 이런 것이다.

 

인연소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운명을 거부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과 인연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무엇인가 남을 위하여 사는 삶이야말로 보람 있는 인생관이 아니겠는가’ 하는 소신에서 남은여생 대작불사를 이루겠다는 원을 세웠다고 한다.

 

 

요즘 갑자기 건강이 좀 악화하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데, 병세가 차차로 호전되고 있어서 대작불사를 곧 시작하게 되어서 날라 갈 듯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도인촌이라는 오지마을에서 특이한 생활 경험을 하고 유불선(儒佛仙) 3교를 만나서 구도인(求道人)의 삶을 살게 된 것을 민족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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