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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뜻을 함께 한 순국선열 우덕순 의사

- 제천 복천사, 7년 전부터 추모제 열어
- 양성문 주지스님 “잊혀지는 우 의사 안타깝다”
- 제천 문화원, 우덕순 의사 서책 발행


[문화투데이 = 최윤해기자] 1919년 3월 1일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시대에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일제강점기시대는 1910년 8월 국권피탈을 시작으로 한민족이 일제강점하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때로 대한의 독립을 외치고 목숨까지 희생했던 순국선열들로 인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 

이중 우덕순 의사(1879~1950)는 1909년 러시아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저격 사살한 안중근 의사와 뜻을 함께하고 피를 나눈 동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덕순 의사에 대해 하얼빈 역이 아닌 다른 역에서 거사를 준비했던 인물이 있었다는 정도로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충북 제천에서 출생한 우덕순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으로부터 세 시간 정도 떨어진 채가구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준비하지만 러시아 헌병의 경호로 실패한다.

제천 독심봉 복천사 사찰에서 우덕순 의사와 안중근 의사 추모제를 약 7년 간 드리고 있는 양성문 주지스님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는 실패했지만 우 의사 또한 안 의사와 같은 순국선열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안 의사와는 달리 우 의사는 알려지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며 “안 의사 못지않게 우 의사 또한 여러 가지의 행보를 통해 한국의 독립에 이바지 했다”고 강조했다.

제천문화원에서 발행한 ‘대한의 영웅 우덕순’ 서책에 따르면 오늘의 안중근기념 활동이 있기까지 첫 번째 공로자는 우덕순 의사로 그의 이름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덕순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역 이등박문 저격 후 함께 체포돼 1910년 안 의사 순국 후 1913년 석방된다.

석방 후 우 의사는 북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고 광복 후에는 흑룡강성의 한인민단 위원장으로 아들과 함께 동포 피난민의 본국 수송에 진력한다.

1946년에는 안중근 36주기 추모준비회와 동상건립기념회를 결성하고 같은 해 3월 26일 안중근추모회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10민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개최한다.

1950년 9월 6.25전쟁 중 인민군에게 죽음을 당하는 그날까지 안 의사는 한 평생을 나라를 위해 살아왔다.

황금자 제천문화원 사무국장은 “문화원에서 발행한 책자로 잊혀져있는 우덕순 의사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길 바란다”며 “앞으로 문화원에서도 우 의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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