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방형길 교동향교 전교를 만나다


향교지(鄕校誌)는 그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조명하는 중요한 자료다. 교동향교(喬桐鄕校)는 서기 1127년(인종 5) 제주(諸州)에 설치될 때 화개산(華蓋山) 북록 구지 '영산 향교골'에 설치됐고 1286년(충렬왕 12)에 유학자 회헌 안양 선생이 원나라에서 공자상을 모셔 서해로 오면서 교동에 들러 문묘에 봉안했던 것에 연유해 교동향교가 수묘라 칭하는 까닭인 것이다.


이에 김진수 한국문화불교진흥원장은 교동 향교 방형길 전교를 만나 향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방형길전교와의 일문일답>


- 향교란.


교동 향교는 안양 선생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셨다가 오시는 길에 이 지구상에서 가장 인의예지를 주장하신 공자님의 초상을 모시고 개경으로 가시던 길에 날이 저물며 더이상 항해를 할 수가 없어 교동에 일시로 보안을 하셔서 한 3개월 동안을 보안을 하셨다가 개경으로 다시 가서 우리 공자님의 상이 돌게 된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에는 234개의 향교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낙도에 위치한 이 조그만 섬에 최초로 공자님 상을 모셔서 지금 대한민국에 향교가 전부다 교동을 숙묘로 하고 돕고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님을 유시해서 안자, 정자, 자사, 맹자 다섯 분을 모시고 또 동무 십위 서무 십위의 이십위를 모셨는데 아국 18현 송조 이현을 모셨다. 저희 향교는 25위를 모시고 이팔 상정일이라 음력 2월, 8월 처음 정자 들어가는 날에 석전 대절을 올리고 있다.


이팔 상정일은 아주 그, 그리고 또 초하루와 보름에 삭일과 망일에는 분향례를 올리고 현재까지 잘 지탱해서 원래 이 자리에는 향교가 없었고 중간에 이건됐다. 고읍이라고 하는 자리 고목근현에 먼저 최초의 향교가 있었는데 읍성이 현기고 읍내리고 이전해 옴에 따라서 향교도 다같이 조우신이라고 하는 학자가 지금부터 한 280년 전에 이쪽으로 이건해서 창건을 해서 지금까지 하는데 규모는 작지만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산문, 명륜당 동제, 서제, 제기고, 수복실 이렇게 예산문 홍살문을 갖추고 있다.


향교를 다녀봐도 이렇게 규모가 잘 짜여 있는 자리는 보기 드문데 규모는 좀 좁아도 가장 잘 건축돼있고 여기에는 또 증수를 여러번 했기 때문에 증수기가 다있고 또 유생들이 과거 시험 볼 떄 여기에서 공부해서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이 여러분이 계시다.


공자님의 유교가 우리나라에 최초 들어올 때 안향 선생님께서 역명도 가져오시고 그래서 위패도 모시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성리학, 유교가 들어온 효시 그 어떤 처음 견문을 여신 분이 안향 선생님이신데 그분을 위패로 모시고 있는 아주 유서깊은 곳이다.


- 향교 곳곳을 둘러본다면.


명륜당은 옛날부터 과거 제도가 있을 때 유생들이 와서 이곳에서 수양하던 공부를 하던 자리다. 그래서 이제 여기에서 모든 것을 다 훈장님으로부터 또 배우고 익히고 해서 과거를 시험봐서 교동에서도 과거에 급제한 분이 여러분이 나왔다.


여기에는 이제 각국 향교에서 보내오신 대한민국의 234개 향교지가 보관돼 있고 아주 옛날에 글씨를 파서 쓴 현판인데 무슨 현판이나면 이것이 증숙기로 해서 그 때 당시에 어느 분이 향장이었었고, 재장이었었고, 도유사였었고 그런것을 했는데 제가 최근에 증숙을 했는데 제가 이 원문을 썼다.


대성전이라는 곳은 불교에서도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나 또 공자님의 대성지선 문선왕을 모신 선현들의 전부다 큰대자가 들어간다. 이 대자는 아무대나 사용이 안된다. 대자는 최고를 칭할 때만 대흥전, 대성전, 대상, 대학교 이렇게 모든 것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를 칠 때만 대자를 쓰는건데 대성전은 최고의 성인을 모시는 집이 되겠다. 그 밑에는 뜰이 있어서 여기서 유생들이 직접 강의도 하고 교육도 받고 하는 곳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NEWS

더보기

배너

포토

더보기